이태식 수필가

푸른문학 수필가 이태식

푸른문학 수필가 이태식 언페이스풀을 보고

푸른문학 수필가 이태식 영화 언페이스풀을 보고

푸른문학신문 기자

작성 2020.06.12 12:12 수정 2020.06.12 21:28
푸른문학 이태식 수필가



♧『언페이스풀』을 보고


         이태식 수필가


『기생충』이 칸과 오스카에서 작품상을 받았다. 내 소리가 봉준호 감독에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그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멀리 떨어져 있고 그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도 그가 내게 힘을 주거나 뭔가 토대를 다지는 사람이라면 그가 저 세상으로 갈 때 조용히 문상하며 같은 시대에 당신과 함께 있어서 좋았었다고 경의라도 표하고 싶은 것이다. 문상객 중에 누군가 “뉘신지? 여긴 어떻게?” “그냥 팬으로 왔습니다.”하고 말 것이다. 우리도 이참에 겉으로 보이는 물질을 위해 경쟁하고 앞뒤 안 재고 그저 앞으로만 갈 게 아니라 이런 문화와 예술에도 관심을 갖고 지원해 줘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자신도 삶을 제대로 사는 것 같고 지금 살아있음에 즐거워할 것 같기 때문이다.



리처드 기어를 좋아해 그의 영화를 다시 보려다가 그가 주연한 영화, 『언페이스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리처드 기어는『미스터 굿바를 찾아서』, 『사관과 신사』, 『브레드레스』, 『노 머시』, 『귀여운 여인』, 『최종 분석』등에 주연으로 나왔는데, 나는 그의 영화를 거의 다 봤다. 그의 상대 배우로 많이 나온, 킴 베신저도 좋아한다. 내 나이 20대 때다. 이제 본 『언페이스풀』도 좋았다. 화면 전개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없어도 되는 장면이나 “이 장면은 왜 있는 거지?” 하는 곳은 없었다. 리처드 기어의 부인으로 나오는 다이안 레인은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데 무르익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성실한 가장이 있고, 가정주부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내용이다. 그걸 알고 남편이 상대 남자를 죽인다. 그들은 자수를 할까 말까 고민하며 영화는 끝난다. 과연 자수를 택할까? 그들의 마지막 대화를 보면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죽을 때 같이 파도에 휩쓸리자고 한다. 아마 그렇게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다음을 생각해 보았다.



다이안 레인은 낯선 남자의 몸에 이끌려 그를 찾아간다. 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아마도 아직은 봐줄만하고 내가 언제 그런 남자를 만날까 하는 생각도 여자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 같다. 자신의 젊음과 남자를 유혹할 수 있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여자로서의 불안이 그 남자를 찾아간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은 ‘금사빠’했다. 근데 남편은 안됐다. 가정을 위해서 헌신했고,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걸 알면서도 그 여자를 곁에 두고자 했다. 끝까지 가정을 지킨 것이다. 그 여자는 남편에겐 하지 않던 몸 가꾸기를, 그 불륜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원피스를 입고 노 브라를 한다.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받고 그에게 온통 빠지면 그게 겉으로 드러나는가 보다. 우연히 만난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를 보고 엄청 예뻐졌다고 했으니. 그건 그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꾸며 그런 것도 있지만, 오르가즘 때의 그 환희에 떨며 호르몬이 분비되어 그런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여간 그런 여자를 별로 힘들이지 않고 얻는 남자는 운이 좋은 것 같다. 그러나 그들 말을 들어보면 자기들도 나름 노력한다고 한다. 그들은 대개 바람둥이거나 꾼들이다. 여자를 유혹하는 법을 본능적으로 안다. 노력에다가 이미 그 베이스가 갖춰진 것이다. 이것도 일종의 재능일 것이다. 여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해야 여자들에게 여운이 남고 몸 달아 하는지 경험으로 알고 미리 연습도 충분히 한다. 경험과 본능으로 여자의 본성을 터득하고 실전에서 응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 제 버릇 개 못 주는 것이다. 여자는 결국 그에게 넘어온다. 여자 10명 중 한 8명 정도가 넘어온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픽업아티스트라 칭하며 그게 자존심인 것처럼 우쭐거린다. 자신이 대시했는데 실패했다면 그걸 큰 수모로 여긴다. 투수처럼 방어율을 유지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전열을 가다듬는다. 그들 사이 성공률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보통의 여자도 바람둥이에 걸리면 잠자리까진 아니더라도 그에게서 묘하게 풍기는 아우라와 냄새에 이끌려 그와 대화까지는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기는 쉽지 않다. 친구들끼리 있는데 스타일리시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참 느낌이 좋으신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잠깐이면 됩니다.” 하면, 그 대시가 나쁘지 않다. 여자는 객관적으로 괜찮은 남자가 친절하게 말을 거는 거, 그 자체는 싫어하지 않는다. 거기다가 친구들 사이에서 자기를 돋보기에 해줬으니.

여자 혼자 한가로이 있는데, 마음에 드는 남자가 보이면 본능적으로 몸과 발이 그를 향해 있고 머리를 쓸어 넘기거나 다듬고(이건 긴장되고 설레기 때문인 것 같다)발을 까딱거리고 팔짱을 끼고 있던 손을 풀고(상대에 대한 호감으로 방어에서 개방으로 몸이 바뀌는 것이다) 자기 엉덩이 뒤로 숨긴다. 와인 잔 스템이나 펜던트 등 물건을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들이다. 여자들에게 별 호감을 얻지 못하는 남자는 지극정성을 들여야 여자가 그나마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타입이 아니라서 여자가 진정으로 만족할지는 의문이다. 능력만 되면 남자는 여자를 건드려 본다. 남자는 첫눈에 ‘괜찮다, 아니다’가 금방 나온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남자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그 중엔 어장에 가둬 놓고 놀기도 한다. 바람둥이들이 어장 관리를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유사시를 대비해(자신이 마음에 드는 여자와 헤어졌을 때) 보험을 들어 두는 것이다.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여자와 잘 안 되어갈 때 어장에 넣어둔 여자를 꺼내 자기 마음을 달래려는(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차인 것에 대한 보복도 있다. 어장에 있는 여자 심정은 1도 없이 자기 자존심 회복만 중요한 것이다) 것이다. 언제든 다른 더 괜찮은 여자가 나타나면 다시 어장으로 던져 넣는다. 방치하며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이를 준다.(평소엔 잘 연락도 안 하던 것이 만나서는 마치 다 줄 것처럼 여자를 황홀경에 빠뜨린다. 이들은 이런 것에 선수다. 여자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진다. 이제부터 여자 마음은 그 남자를 믿었다 의심했다 하며 혼자 사랑의 시소타기를 한다. 그 안에 계속 있으면 나중엔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다. 그러나 언젠가는 희미한 빛을 본다는 작은 희망을 안고 포기하지 않는다. 그 여자는 여장 속에서 이제나 저제나 그 남자의 연락을 기다린다. 사랑하는 남자가 언젠가는 자기 진심을 알아줄 거라며 지금을 견디는 것이다. 심지어 의심하는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그 남자에게 더 집착한다. 어장에 갇힌 것 같은 촉이 오면 빨리 거기서 나와야 한다. 이들은 그냥 ‘나쁜 남자 스타일’을 가진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 뼛속까지 ‘나쁜 새끼들’이다.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얼른 나와야 한다. 그런 노력과 정성이면 자신과 맞고 그렇게까지 애쓰지 않아도 나를 진정 아껴주고 나만 바라보고 사랑해주는 순정파, 좋은 남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좋은 남자는 의외로 많다. 물론 이들은 재미도 없고 지루하고 뭔가 짜릿한 것도 없다. 그러나 나중에 이것저것 다 겪은 다음에 이들의 진가를 알아볼 것이다. 이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장 속에 있어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현타’하고 퍼뜩 나와야 한다.(그런데 예쁜 여자라면, 거기가 어장 속이라도 좋다고? 그동안 너무 물 밖에서만 있었다고? 설마!)

남자는 지극정성이면 여자를 넘어오게 할 수 있다. 여자는 ‘나를 위해 저리 노력하는데, 그 정성을 봐서 한번 만나나 볼까? 싫으면 그만이지 뭐.’ 하며 자기와 타협한다. 그러나 남자는 아니다. 첫눈에 마음에 들어야 한다. 여자는 자기에게 처음엔 남자가 그리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었어도, 그가 하는 것이 전부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남자에게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다. 첫인상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자기를 얼마나 아껴주고 사랑해 주나가 더 중요한 것이다. 여자는 전혀 비호감이 아닌 이상, 좀 괜찮다 싶으면 일단 자신을 향한 그 노력을 인정해 준다. 자기에게 어떻게 하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켜보는 것이다. 여자는 본능적으로 남자가 자기를 ‘쉬운 여자’로 보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있다. 그런 것 때문에 남자처럼 단번에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그런데다가 여자는 남자가 쏙 마음에 들고 그와 떨어지지 않고 붙는다면 남자가 먼저 질리고 여자는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굉장히 힘들어 하며 서서히 마음을 닫는다. 이런 게 반복되면 사귀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헤어지는 날이면 내가 더 사랑해서 상처받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내면에 있다. 여자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간섭하고 집착하면 남자는 두려움을 갖고 거기서 나오려 한다. 남자는 원래 자유를 원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사랑도 빨리 하고 끝냄도 빠르다. 뭔가 정복욕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원하던 것을 얻었으니 흥미가 갑자기 떨어진다. 

여자는 남자가 마음에 들면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남자는 흥미와 신비감이 떨어져 호기심이 저하된다. 보고 싶다고 계속 연락하지 말고 남자가 전처럼 잘해주지 않으면 갑자기 관계를 뚝 끊어버려야 한다. 대신 취미나 직장, 친구와 수다 떨기 등, 자기 일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면 된다.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 너무 남자에게만 의존하면 곧 바닥이 드러나고 남자에게 차이게 된다. 남자와 ‘자신에 대한 사랑’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남자가 내 인생의 다는 아니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이 여자, 도대체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하는 불안감과 신비로움, 비밀로 감싸야 한다. 자기 여자에 대해 모르는 것 없이 다 알고 뭔가 베일에 싸인 게 눈곱만큼도 없으면 남자의 도전 정신은 사라진다. 남자와 만나기만 하면 미주알고주알 시시콜콜 다 종알거리다,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면 남자는 다시 처음처럼 여자에 대한 궁금증이 도발하고 신비롭게 여긴다. 뭔가 수상한 것이다. ‘혹시, 나 모르게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아닐까?’ 하며 불안해한다. 처음 만나 남자가 여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어쩌면 그 여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니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여자는 또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털털하다가도 내숭을 떨고 갑자기 여성스러워지면서 가능하면 얼굴 각도도 가장 예쁜 각도를 유지하기 위해 머리를 돌려 예쁜 자세를 취한다. 첫 눈에 반한다는 것은 이것이 아닐까? 여자는 남자가 마음에 드니까 그 앞에서 가장 예뻐지려고 한다. 자신의 리얼을 감춘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의 진짜를 숨기는 그런 내숭 때문에 그 여자에 대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신비감에 싸인 여자를 캐고 싶은 도전욕이 생긴다. 이게 합쳐진 게 아닐까? 그러니까 남녀 간에 긴장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면 남자가 계속 캘 게 생기도록 여자는 계속 감춰야 하는 것이다. 다 내주면 그때부터 게임 오버다. ‘팩폭’을 해서 미안한데(자, 자기 멘탈을 꼭 부여잡고), 여자가 남자 앞에서 너무 거리낌이 없고 숨기는 거 없이 너무 편하다 싶으면 자신을 전혀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그리고 여자는 서서히 불이 붙고 식는 것도 늦다. 여자의 마음 주기는 늦기 때문에 헤어지면 여자의 상처가 더 큰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며 과연 여자의 마음에 남자가 동시에 둘이 들어앉을 수 있나 살펴보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다이안 레인에게 리처드 기어가 계속 마음에 안 드는 것(남자에게 지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리처드 기어가 다이안 레인의 마음에 오로지 혼자 결국 앉아 있다. 여자는 동시에 두 남자를 품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여자가 더 솔직한 것 같다. 남자는 자기 아내가 버젓이 있고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돌싱이라며 여자를 잘도 속여먹고 작업을 건다. 그러나 여자는 이런 남녀관계에서 속이지 않는 것 같다. 상대가 싫으면 솔직히 싫어졌다고 할 것 같다. 그리고 헤어지자고 한다. 그러나 남자는 크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오는 여자 거의 마다하지 않는다. 여자의 마음엔 두 남자가 동시에 들어앉기 쉽지 않은 것 같다. 대개는 한 남자를 정리한 다음, 다른 남자를 만난다. 다이안 레인도 사랑을 포기하고 결국 가정으로 돌아온 것은 자기 마음속에 두 남자가 동시에 들어앉는 이런 상황을 못 견뎌 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이런 남녀 간의 차이를 알면 연인 사이에 전혀 이해 안 갔던 것도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상처를 덜 받고 덜 싸우지 않을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제 둘에게 엄연히 존재하는 이런 차이를 알면 갈등을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더 깊고 오래 사귈 것 같다. 그리고 사실은 좋은 사람인데 단지 연애경험이 부족하여 여자 마음을 모르고 서툴다고 마음을 쉽게 접지 말고, 픽업 아티스트 같은 쉬레기들에게 ‘마상’받지 말고 진국 같은 좋은 사람 만나 예쁜 사랑 오래 오래 했으면 좋겠다.



♧이태식 수필가 프로필


○현.서울교통공사 재직

○푸른문학신문 이사

○푸른문학 운영이사

○ 1967년 충북 음성 출생

○ 2018년 푸른문학 수필 ‘책 만 권을 읽으면’을 통해 등단

○ 2019년 부천시 독후감 대회 수상

○ 2020년 푸른문학신문 1주년 수필 부문 최우수상


[푸른문학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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