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식 작가

푸른문학 이태식 수필가

푸른문학 이태식 수필가

푸른문학신문 기자

작성 2020.06.12 20:46 수정 2020.06.12 20:47
푸른문학 이태식 수필가



♧『사랑의 꿈』을 읽고


      

            이태식 수필가



이 소설은 손보미 작가가 쓴 소설이다. 소설을 몇 번 더 읽어야 그 뜻을 정확히 알겠지만, 그렇다고 더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기억나는 것으로만 해서 내 생각을 넣고자 한다. 어차피 모든 사물은 그것을 보는 시기나 환경에 따라 즉 읽는 사람이 어느 상태인지에 따라 변하는 것이므로.


나는 전에 그녀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어느 유명한 소설가의 인터뷰어를 맡은 글을 읽기도 했다. 그것을 기회로 그녀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는데 장편인 『디어 랄프 로렌』도 읽었다. 그 작가는 사람의 심리를 섬세하게 잘 위기감 있게 긴장을 유지한 채 전개해 가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이 장편은 짧지 않은 길이인데도 금방 읽었던 것 같다. 이 작가는 사진으로 보니 좀 통통한 게 섹시한 매력이 있는 것 같고 자신도 그걸 알아 공인 앞에 설 때, 그런 모습을 곧잘 유지하는 것 같다. 이 작가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내가 그녀의 작품을 지금 읽은 후이고, 전에도 관심을 가졌던 작가라 호기심이 이는 것은 자연스런 것 같다. 나는 문학상을 타고 기존에 단편을 내고 장편을 낸, 그래서 기성작가로 불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더는 읽고 싶지 않았지만(왜냐면 글에 대한 절박함이 대개는 전보다 희미해지는 것 같아서) 내가 일부러 산 책이고 안 읽을 수 없어 읽었더니 또 나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마도 겉으로 그냥 보는 것과 그 작가의 속을 막상 들여다보면 생각이 변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일단은 그 사람에 대해 겉으로가 아닌 어느 정도 익숙해지게 아는 게 그 사람에겐 더 낫고(자기를 오해 없이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 알 수 있기에) 나에게도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을 더 정확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하고 책을 많이 읽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고 오직 한 가지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냥 지금 이는 생각을 글로 옮긴다는 것을.




손보미 작가는 자신이 프로필에서 밝혔듯이, 80년 서울 출생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41세가 되는 셈이다. 여자 나이로 먹을 만큼 먹었고 결혼을 했다면(했는지는 모르지만) 10년차 정도 되고 아이가 있다면(대개 사회적으로 따지는, 상식적인 삶을 살았다면) 유치원에 다니거나 초등학교 저학년일 것이다. 이 소설엔 대학생인 딸이 나온다. 그러면 그 여자는 나이가 딸이, 20대 초반이면 50대 중반 정도는 될 것이다. 그리고 딸의 할머니가 나온다. 그럼 할머니 나이는 대개는 한 세대가 20년 이상 차이가 나니, 아참 이 여자(이 글에선 그녀)는 22살에 결혼을 했다고 했다. 그들의 나이 차이는 20년이라고 했을 때, 그 할머니는 지금 70대 중반일 것이다. 그 할머니는 지금은 요양원에 있다.(치매기가 심하진 않고 약간 있다) 이 글은 한 마디로 말하면 여자들의 세계(세대)를 다룬 것이고, 여자들을 옭아 매는(남자도 마찬가지겠지만) 틀에서 안전하게 사느냐 아니면 그 틀을 깨고 자유롭게 사느냐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 가부장적인 사회적 틀을 넘기는 쉽지 않은데, 그 틀을 넘는 사람은 자기를 실현하려고 시도하는 것이지만, 그러면 사는 게 고통이겠고 그냥 체념하고 틀에 순응하여 살면 몸과 마음은 편안할지 몰라도 뭔가 무기력하게 자기의 온갖 것을 겉으로 내뿜지는 못한, 그런 서운함이나 욕망의 결핍을 맛보며 뭔가 불만족하게 살아갈 것 같은 것, 그것 중 어느 것을 택하며 살지 고민하는 문제를 끄집어 낸 것 같다. 그러나 위대한 그 무엇을 가진 희귀한 인간이 아닌 이상, 그 이상만을 쫓다가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에 또 불안감을 떨칠 수도 없는 것이다. 

나라면 이렇게 살겠다. 내가 보기엔 나는 엄청난 위인 감도 아니므로 혹은 그 잠재력은 또 엄청나기에 그 위인으로 충분히 올라설 수도 있기에, 일단은 현실에 맞게 사는 것이다. 그렇지만 늘 깨어 있는 것이다. 현실에 발을 놓고 있지만 이상을 절대 잊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또 현실에서나마 자기를 실현할 수도 있다고 믿고 계속 이상을 향해 오늘도 걸음을 옮긴다는. 





그(남편)은 남쪽 지방에서 부자다. 그러고 정혼자가 있다. 그렇지만 그녀와 대학 때 사랑에 빠져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살다 딸을 낳는다. 그러나 둘은 얼마 안 있어(한 4년 후)이혼한다. 그리고 그(남편)는 지방 남쪽으로 간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는다. 그 할머니는 자기 손녀딸을 여름방학 때 오라해서 같이 지내지만 그 여자를 며느리로 받아들이지 않고 요양원에 있는 동안까지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게 서운한가 하는 것이다. 이게 사회적 틀이다. 그녀는 딸이 열 살일 때, 딸을 버리려고 차로 더 남쪽(남편의 고향보다 더 남쪽)으로 가려 한다. 그 차엔 모임의 일원인 공주연이 타고 있다.(좀 이상한 게 주인공은 그냥 ‘그녀’이지만 그 친구는 이름을 밝힌 ‘공주연’이다) 가다가 고양이를 친다. 그것을 둘이 있는 힘껏 묻어준다. 손에선 피가 난다. 

나는 여기서 한 인간에게 운명이 있고, 그것을 주어진 조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는 게 최선이라 본다. 사회적 틀은 있는 것이고, 쉽게 변하지도 않지만 언젠가는 변할 거라 믿고, 그렇다고 자기의 운명(이미 존재하는 사회적 틀에 갇힌)을 한탄하며 땅을 칠 게 아니라 인간의 한계와 유한성에서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다. 생명 하나하나는 소중하고 딸도 소중하고, 할머니도 그런데, -모두가 이 숨 막히는 틀을 벗어나려고-한 번 정도는 일탈(기존 틀 벗어나기)을 시도한다(할머니는 병원에서 폐암 검사를 받을 때, 웃옷을 훌훌 벗어버렸다. 속옷까지도). 그러나 그 틀도 만만찮다. 그럼, 거기서 그냥 좌절할 것인가. 아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보는 것이다. 그게 답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기질이나 어떤 꿈을 향해 방향은 잡아야 한다는 것, 그게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주어진 조건은 만만찮은데 거기서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그 최선이 그냥 몸부림이 아니라 방향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자기에게 맞는 방향성이야 의미가 있고 그것은 곧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고, 그걸 하며 행복해하는, 그것으로 족하다. 틀을 그냥 두면 안 되지만 함부로 달려들면 다치기만 한다. 자기의 기질을 검토하여 계획을 짜고 그곳에서 할 것을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할 것을 하는 중에도 자기에게 맞는 이상과 신념을 향해 눈은 거기서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 


여자 작가가 많아(물론 전엔 남자 작가만 많아 남자 얘기만 했지만) 그게 역전이 되어 여자들의 역사와 서사는 넘쳐난다. 남자들의 이야기도 해야 한다. 남자도 어디로 갈지 헤매고 있다. 같이 가야 한다. 어떻게 공통의 관심과 꿈을 실현할지 서로 상의해 봐야 한다. 손보미 작가는 41세에 50대 중반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이 차이가 15년은 난다. 딸은 20대이고, 그녀(주인공)은 50대 중반이고, 그녀의 딸의 할머니는 70대 중반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서 그녀(50대 중반)의 심리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런 심리다루기가 남자 작가에게도 나와 남자의 심리를 같이 다뤄야 한다. 그들도 힘들기 때문이다. 같이 골고루 다뤄야 한다. 

손보미 작가는 2011년에 동아일보로 등단했다. 내가 봉천역에 있을 때다. 그때도 나는 컴퓨터를 엄청 했다. 나름 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래서 내 기질은 이런 것에 한 번 빠지면 그냥 끝까지 판다는 것이다. 성과도 있었다. 자격증을 여러 개 땄다. 뭐든 그것에 몰입하면 나름의 성과는 반드시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부작용도 있다. 그러나 그 부작용을, 열정이나 자기실현에 대한 의지가 결국은 이기는 것 같다. 여자에게 불리하다. 남자는 아직은 자기의 뜻을 펴기 위한 것에서 더 자유롭다. 이글은 이것을 말하는 것 같다. 여자가 자기를 더 잘 실현할 수 있나, 전보다. 아직은 힘들지만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문학상도 많이 받았다. 한국일보, 김준성, 대산문학상,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글은 잘 쓰는데 아쉬운 건 남자작가가 없어 이젠 상대적으로 남자들의 심리를 하소연하는 작품이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글은 못쓰지만 이렇게라도 남자들의 고뇌를 적고 누가 그것을 읽었으면 좋겠다. 

경희대 국문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배움에 대한 욕심도 많은 것 같고, 아마도 그걸 토대로 경제적인 안정감을 확보한 다음, 이 정도면 거의 글에 대해 인생을 걸었을 것이므로 계속 글을 쓸 것 같다. 좋은 작품을 기대하고 책이 나오면 부지런히 읽어야겠다. 나에게 잘 맞는 문체와 언어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손보미 작가는.

푸른문학 이태식 수필가


♧이태식 수필가 프로필


○현.서울교통공사 재직

○푸른문학신문 이사

○푸른문학 운영이사

○ 1967년 충북 음성 출생

○ 2018년 푸른문학 수필 ‘책 만 권을 읽으면’을 통해 등단

○ 2019년 부천시 독후감 대회 수상

○ 2020년 푸른문학신문 1주년 수필 부문 최우수상


[푸른문학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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